감각오거나이징2 미각의 무질서를 없애본다 : 차가운 캡슐 속 식재료의 레이어링과 미식 오거나이징 문을 열면 펼쳐지는 유통기한의 고고학 박물관어느 늦은 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주방으로 다가가 냉장고 문을 벌컥 열었을 때입니다. 훤하게 불이 들어오는 차가운 캡슐 안에서 저를 반겨준 것은 갓 조리된 유기농 식재료의 향연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비닐봉지 뭉치들과, 언제 배달되었는지 기한을 추정할 수조차 없는 찌개용 양념장 용기들의 괴기스러운 행렬이었습니다.손을 깊숙이 밀어 넣어 구석에 박혀있던 소스 병을 꺼내 들었습니다. 유통기한 라벨은 이미 세월의 풍파를 견디지 못하고 흐릿하게 지워져 있었고, 병뚜껑 테두리에는 말라붙은 굴소스 슬러지가 경화되어 마치 고대 유적지의 아티팩트처럼 단단하게 고착되어 있더군요. 문을 열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차갑고 텁텁한 냉기와 비닐봉지들의 기.. 2026. 9. 29. 사계절 계절감의 스케일링 : 계절이 바뀔 때 행하는 '집안 공기 & 섬유의 이행 의식' 계절을 배신한 집, 그리고 거실에서 마주한 기괴한 유령지난가을의 일입니다. 창밖에서는 제법 쌀쌀한 가을바람이 불어오고 가방 속에 얇은 트렌치코트를 챙겨 다녀야 할 만큼 계절이 고조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제 집 문을 열고 들어서면 타임슬립을 한 듯 기묘한 불쾌감이 밀려왔습니다. 소파 위에는 여전히 바스락거리는 한여름용 청량감 리넨 패브릭이 널브러져 있었고, 창가에는 햇빛을 가리느라 쳐둔 얇은 레이스 커튼이 차가운 바람에 홀로 무기력하게 펄럭이고 있었죠.몸은 이미 옷깃을 여미는 가을을 살고 있는데, 가장 사적인 안식처여야 할 공간은 여전히 여름의 유령에 사로잡혀 있었던 겁니다. 그날 밤, 소파에 앉아 찬 바람을 맞으며 얇은 홑이불을 어깨에 둘렀을 때 문득 깨달았습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던 건 바깥 날씨 .. 2026. 9. 27.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