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게 이어지는 장마와 푹푹 찍어 누르는 듯한 더위가 절정에 달하면, 집안 곳곳의 숨은 공간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비명을 지르기 시작합니다. 외출했다가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채 겨우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고, 신발장 문을 무심코 당기는 순간 훅 하고 풍겨 오는 그 묵직하고 퀴퀴한 흙냄새와 신발들에 배어든 눅눅한 습기. 그리고 시원한 보리차 한 잔을 마시려 냉장고 문을 젖혔을 때 코끝을 찌르듯 스치는 온갖 반찬 냄새의 묘한 컬래버레이션 잔향들. 살결에 닿는 공기만큼이나 찌뿌둥하게 가라앉은 그 악취들은, 무더위에 지친 일상을 한순간에 아득하게 만들곤 하지요.
얼마 전의 일입니다. 장대비를 뚫고 퇴근해 거의 기어 들어오다시피 현관에 서서, 축축하게 젖은 운동화를 벗어 넣으려고 신발장 문을 쾅 열었습니다. 그 순간, 거짓말 조금 보태서 훅 하고 밀려오는 냄새 때문에 저도 모르게 신발장 문을 도로 쾅 닫고 말았습니다. 마치 좁은 신발장 안에서 여름철 묵은 신발들이 집단으로 시위를 벌이는 것만 같은 기세였죠. 장마철 빗물과 발의 땀을 한껏 머금은 운동화와 구두들이 통풍도 안 되는 좁은 장식장 안에 갇혀 며칠 동안 푹 익어가고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에어컨을 가동해 거실 공기를 아무리 상쾌하게 맞춰놓으면 무엇합니까. 현관문이나 신발장 문 하나만 슬쩍 열려도 코를 찌르는 그 꿉꿉함에 하루 동안 밖에서 쌓여온 피로가 두 배는 더 무겁게 어깨를 누르는 듯했습니다.
그뿐인가요. 목이 말라 냉장고로 달려가 문을 열었더니 이번엔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난주에 넣어둔 마늘장아찌의 알싸한 향과 언젠가 끓여둔 청국장의 깊은 구수함, 그리고 구석에 살포시 잊혀 가던 김치 국물 자국이 냉장고의 찬 공기와 만나 아주 대담하고 오묘한 악취를 풍기고 있더군요. 냉장고 선반 구석을 살피다 끈적하게 눌어붙은 양념 자국에 손가락이 쩍 하고 들러붙었을 때는, 순간 '아, 오늘 밤은 그냥 눈을 감고 살림을 파업할까' 하는 깊은 갈등이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둔다면 오늘 밤 꿈속에서도 퀴퀴한 냄새에 시달릴 것이 뻔했습니다. 어느 볕이 잠시 쨍하게 들던 주말 오후, 더 이상 이 눅눅함을 방치할 수 없다는 생각에 드디어 팔소매를 야무지게 말아 올렸습니다. 고무장갑을 착 껴입고 신발장 문과 냉장고 문을 양쪽으로 홀랑 젖혀 놓은 뒤, 찬장 깊숙한 곳에 모셔두었던 베이킹소다와 구연산, 그리고 지난번 카페에서 얻어와 베란다에 잘 말려두었던 원두 가루 봉지를 꺼내어 들었습니다. 거창하고 힘든 대청소를 하겠다는 비장함보다는, 이 갇힌 공간들에게 시원하고 보송한 숨통을 터주어야겠다는 가벼운 다짐과 함께 말입니다.
많은 분이 여름철 신발장의 습기와 악취를 잡기 위해 마트에서 향이 아주 강한 인공 제습제나 방향제를 사다 넣곤 합니다. 저 역시 예전에는 장미향이니 라벤더향이니 하는 강렬한 제습제를 칸칸이 올려두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지요. 신발장 바닥에 쌓인 먼지와 밑창에 눌어붙은 습기를 그대로 둔 채 강한 향을 덮어씌우니, 얼마 지나지 않아 퀴퀴한 발냄새와 장미향이 끔찍하게 섞여 알 수 없는 괴물 같은 악취가 탄생하더군요. 문을 열 때마다 오히려 머리가 핑 도는 기분이었습니다.
살림의 노하우는 역시 기본으로 돌아가는 데 있었습니다. 우선 신발장 안에 들어있던 신발들을 모조리 밖으로 꺼내놓고, 칸칸마다 굴러다니는 일간지 신문지를 2~3겹으로 평평하게 깔아주었습니다. 신문지의 성성하고 구멍 뚫린 종이 결은 공기 중의 수분을 흡수하는 데 있어 그 어떤 고급 제습제 못지않은 근사한 역할을 해냅니다. 그 위에 신발들을 사이좋게 소복이 올려두고, 다 먹고 남은 원두 가루나 베이킹소다를 삼베 주머니나 구멍 난 못 쓰는 양말에 꾹꾹 채워 넣어 신발장 구석과 땀이 가장 많이 차는 운동화 속에 쏙쏙 집어넣어 주었습니다.
이때 초점은 신발장 문을 닫기 전, 부채나 두꺼운 신문지를 들고 안쪽 공기를 향해 팍팍 부채질해 주며 갇혀있던 더운 공기를 밖으로 쫓아내는 '바람길 만들기'입니다. 단 몇 초의 부채질만으로도 신발장 내부의 눅눅한 기온이 뚝 떨어지며 손끝으로 은은하고 가벼운 서늘함이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신발장의 한숨을 가볍게 돌려놓은 뒤, 여세를 몰아 주방 냉장고 앞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선반 구석에서 나 몰라라 밀려나 있던 양념병 밑으로 기분 나쁘게 얼룩진 끈적임과, 온갖 반찬 냄새가 한데 얽혀있던 차가운 공기를 가만히 마주합니다. 여름철 냉장고는 강한 냉기 때문에 습기가 없을 것 같지만, 실은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들어가는 외부의 더운 공기가 내부의 찬 공기와 부딪히며 선반 구석구석에 미세한 물방울과 잡내를 묵혀두게 만들거든요.

이 끈적이고 찌든 냉장고를 구원해 준 것은 거창한 화학 세제가 아니라, 따뜻한 물에 구연산이나 식초를 살짝 풀어서 적신 마른행주 한 장이었습니다. 찌들어 있던 선반의 기름때와 김치 양념 자국을 행주로 쓱 문질러 닦아내자, 식초 특유의 살균 성분이 찌든 악취의 원인을 부드럽게 녹여내며 쩍쩍 들러붙던 유리 선반이 단숨에 뽀득뽀득하고 투명한 결을 되찾더라고요!
선반을 다 닦아낸 뒤에는 냉장고 안쪽에 마시다 남은 김 빠진 원두커피나 작은 숯 한 조각, 혹은 뚜껑을 연 베이킹소다 용기를 조용히 올려두었습니다. 인공적인 약품 향이 아닌, 음식 본연의 신선함만을 남겨주는 정갈한 무취의 차가움이 선반 사이사이를 부드럽게 채워나가기 시작하더군요. 잘 마른 삼베 천으로 선반 구석의 잔여 물기까지 쓱 가셔 내고 나자,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코끝을 감돌던 그 텁텁하고 찌근덕거리던 기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눈까지 번쩍 뜨이는 듯한 청량함이 피어올랐습니다.

모든 정돈을 마치고 한숨을 돌리며, 다시 현관 신발장과 주방 냉장고 문을 순서대로 가만히 열어보았습니다. 아침까지만 해도 훅 하고 사람을 질리게 만들며 인상을 찌푸리게 했던 묵직한 악취와 습기는 온데간데없고, 손끝에 와닿는 선반의 매끄러운 감촉과 코끝으로 스치는 무취의 알싸하고 보송한 기운이 마음을 다정하게 두드리더라고요!
집안의 자그마한 공간 두 곳을 정성껏 비워내고 눅눅함을 자제시켰을 뿐인데, 하루 내내 푹푹 빠지는 더위와 땀에 시달려 눅눅하게 젖어있던 제 마음의 결까지 보송하게 다려진 느낌이었습니다. 창밖은 여전히 축축하고 기분 나쁜 습기로 가득할지라도, 내가 머무는 집안의 작은 구석들은 온전히 보송하고 쾌적하게 나를 반겨준다는 안도감이 가슴 깊은 곳에서 은은하게 차오르는 순간이었습니다.
오늘 밤, 닫혀있던 신발장 문이나 냉장고 문을 가만히 당겨보세요. 혹시 문을 열기가 두려워 망설여지신다면, 구연산 섞은 따뜻한 물행주 한 장과 쓰다 남은 베이킹소다 한 소꿉을 들고 그 다정한 보송함을 선물해 보시길 권합니다. 뽀득해진 선반과 냄새가 싹 가신 신발장 문을 닫을 때, 더위에 지쳐 소란스럽고 눅눅했던 여러분의 마음도 어느새 편안하게 가라앉아 시원하고 쾌적한 여유를 되찾게 될 테니까요. 구연산 물행주가 지나간 자리의 정갈한 뽀득함처럼, 밖에서의 고단했던 더위와 피로도 깨끗하게 다독여지는 시원한 주말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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